부제가 '17년 전의 약속'으로 붙은 걸, 글쓰기를 열면서 알았다.
개봉 전, 고맙게도 감독과의 대화 GV가 포함된 상영 시간에 맞춰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언제 개봉하나 기다렸는데, 언뜻 싸늘함도 느껴지는 선선한 계절에 잘 맞게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초조하게 사탕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다 바스라진 사탕 조각이 혀 끝을 얕게 베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는데, 세 친구의 17년 전과 오늘을 오가는 내내 그렇게 사탕에 혀를 베인 듯 했다.
둘이 아닌 셋, 그것도 한창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우는 그 시절 여학생 셋이라는 구도에 '이 영화, 꽤 예민하겠다.' 각오를 했다. 그리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을 큰 축으로 둔 까닭에 '현대 도시에서 이런 대형 사고는 당사자와 가족 이외에도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충격을 나눠 갖는다.'는 감독의 덧붙임도 인상깊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중계 방송을 보며 나는 내 또래 아이들이 그렇게 된 일이 믿겨지지 않았고 엄마는 모교 후배들이라 더욱 아프게 느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 셋의 우정과 균열이 그 시절 가장 큰 사건인데, 다리가 무너지는 학교 밖 대형 사고가 끼어들며 흉터가 옅어지지도 않는 큰 상처를 남겼다. 넘겨 온 달력 두께로 어지간히 그 상처를 덮었다싶었는데 웬 바람이 불어 그 달력을 모두 공중에 흩어버렸다. 상처의 깊이도, 덧난 흔적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 눈 감지 않고 바라볼 자신이 있나.
김희정 감독도 '남자 배우와 스탭들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여자친구나 부인을 통해 해석을 해야하는 부분이 많았다.' 했다. '그래서 뭐, 결국 성까지 붙여 이름 불러서 싸운 거야?'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신경이 바짝 곤두서며 소위 '기가 빨리는' 예민함은 없어서 이야기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은 레퀴엠이라도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브람스의 레퀴엠을 쓰며 주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저 세상으로 같이 건너가지 못했지만, 이 세상이 도통 사는 세상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림자의 끄트머리 그림자를 비추고 어루만지는 따스한 노래에 기대어 새로운 달력을 넘길 수 있게 되기를.
Brahms - Ein Deutsches Requiem, Op. 45: V. Ihr habt nun Traurigkeit
http://www.youtube.com/watch?v=KKnGpMiDQIM&feature=channel&list=UL
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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