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두 개의 문'을 봤다. 몰지각한 자들이 평점 테러를 한다는 소식에 화가 나, 평점 쉴드를 쳐본다.
용산 참사가 벌써 3년도 지나 건물이 있던 자리는 비었지만 철거민, 당시 진압에 투입되었던 경찰 특공대원들에게는 그 세월만큼 상처가 쌓였다.
한정된 자료일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은 팽팽하게 눈길을 묶어둔다. 화염병이 어떻고 신나가 어떻고를 떠나 그 날을 둘러 싼 보이는 이와 보이지 않는 이들을 캐묻는다. '망루를 쳤는지, 안에 신나가 얼마나 있었는지, 그건 중요치 않다. 생존권을 주장하는 국민을 진압하기 위해 특공대를 투입한 것 자체부터 잘못된 일이다'는 끄트머리 말씀이 핵심이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그 사건을 덮기 위한 홍보 지침을 내린 그 분이 있는 곳, 처음에는 준비없이
무리한 진압 명령을 내린 경찰 상부의 책임을 묻고 답했던 2,000여쪽 자료를 은닉했던 검찰, 사건의 본질을 쏙 빼놓고 화염병, 신나 등 자극적인 소재만 두들기는 언론, 그리고 다큐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투자와 개발이란 껍질을 쓴 무자비한 개발 주체인 재벌 건설사와 투기에 눈이 먼 이들. 그리고 잊어버린 사람들.
마침 오늘 신문에 대기업, 외국계 프랜차이즈로 얼룩진 홍대 앞을 다룬 기획 기사를 읽었다. 이 지긋지긋한 개발 난도질은 작은 용산을 끊임없이 찍어내고 있다. 경찰 특공대를 처음 만들었던 때는 올림픽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예방책이었다고는 하는데, 생각해보니 올림픽 때 '환경 미화'를 위해 무리한 아파트 개발을 하고 밀려난 사람들은 성화봉송로에 있다는 이유로 땅굴을 파고 들어 가 살게 만든 저 때 아니던가. 올림픽이 끝난 뒤로 시위 진압, 노조 진압에 써먹는다. 조금 멀게는 연세대 진압, 가깝게는 쌍용차 노조원들을 무자비하게 패던 그 장면도 나온다.
'농성자들을 섬멸시킨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별들을 집어 삼키는 검은 구덩이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섬멸시키겠다는 건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저 치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절차 무시한 부검, 은폐한 증거, 극악한 성폭력 가해자에게 가는 형량보다 더 센 형량을 확정한 판결, 그 상황을 만든 가해자들은 아무런 추궁과 처벌을 받지 않는 게 과연 법치인가. '오늘로 이 땅의 사법부는 죽었습니다.' 이 말이 절로 나오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바로 세우라'면서 그 다짐은 어디 갔냐며 항의글도 여러 차례 써봤지만 돌아오는 건 ctrl+c,v한 답변을 보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다 죽어!'
'여기 안에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 알아.'
포스터에 '적개심을 명령받았다'는 글귀가 있다.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대원들의 친필 자술서와 증언 재연을 보면 농성자와 대원 모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빨리 진압되어 정권에 탈이 없기만 바라는 윗 분들의 조급증만이 있었다. 오랜 훈련과 경험으로 단련된 대원들조차도 건물 진입이 어려웠고 중간에 위험을 느꼈으며 생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 철거민들 옥상에 올라가게 만들고, 빨리 덮어버리고싶어 무작정 대원들을 투입시킨 국가는 끝없이 비열하고 비겁하다. 명령을 수행하고 죽은 사람들만 있지, 명령을 내린 자는 없는 참으로 이상한 일, 1980년에도 있지 않았나. 명령을 내린 자들 이외에는 모두에게 큰 상처와 고통만 남는 일이 되풀이되는데, 무자비한 폭력에 한 없는 이해를 베풀고 권력을 맡기는 사람들이 참 무섭다.
끝나지 않은 공포
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을 다시 듣는다.
'조금만 더 살고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중략)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 간 사람, 너무나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이게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이승이 아니라 지옥이 아닌가.
서울 시장이 바뀌고나니 정체 모를 디자인 서울 대신, 거주자 우선 도시 계획이 시 정책 알림 포스터를 채웠다. 행정적으로 올바른 틀을 잡아 마음이 놓이는데, 늘 경계해야 할 점은 투기 욕망과 그 욕망을 여유있게 웃으며 집어 내 흔드는 재벌과 언론. 그 욕망은 나와 이웃들 안에도 일렁이고 있으니. 이 정권과 다른 성향을 지닌 정권으로 바뀐다 해도 영혼없는 도시 계획, 투기 세력, 재벌과 타협한다면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런 일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일부러 아이라인 미장착하고 영화 시작 전 손수건을 꺼내 쥐었는데, 손수건은 눈물을 닦는 대신 쥔 손 안에서 쪼글쪼글해졌다. 여름에 시원한 블록버스터, 공포 영화를 찾곤 하는데, 바로 여기 끝나지 않은 공포가 있다. 뜨거운 불길에 죽어 간 사람들, 그 뜨거운 불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차갑고 깊게 짚어보게 한다.
대선 즈음, 바람이 매서울 때 다시 봐야 할 작품.
+) 그 밖에
증인 신문 가운데 용산 경찰서장은 개그를 맡아 관객을 웃겼다. 스크린 안에서야 웃겼지만 실존 인물이고 경찰서장이란 자리에 앉아있었던 건 하나도 개그가 아니지만.
최근에 형이 잡혀가신 그 분이 스크린을 가득 채워 식겁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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