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2월 프랑스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 안에서 중간중간 정차할 때 사진을 찍어뒀는데 저 촌스러운 포스터는 뭐야 싶었는데 알고보니 프랑스 영화 역대 흥행 2위의 기염을 토한(^^) 영화였다. 그 영화를 나는 이제서야 봤다. 지금은 자막이라도 있지, 그 때는 자막도 없는 마당에 불어를 못하는 주제에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흥행 2위의 위엄을 자랑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Bienvenue Chez Les Ch'Tis, 슈티의 집에 온 걸 환영한다는 뜻.
슈티는 프랑스 북부 사람들과 사투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프랑스 북부에 온 걸 환영해!
이 영화를 보며 프랑스 북부에 유배(-_-)되었던 때가 겹쳐보이니 다른 프랑스 코미디를 볼 때보다 공감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프랑스 남부 우체국에 근무하는 이 아저씨는 바다가 있는 남부에서 살고 싶다던 아내의 성화에 힘입어 전출 신청을 한다.
하지만 장애인 우선 배치 정책에 따라 비장애인인 자신이 전출에 실패하리라 생각하고 휠체어에 앉는다.
이 부분에서 프랑스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했다.
아무튼 이 아저씨는 휠체어에 앉아 조사관을 맞이하며 장애인인척 하는데 제법 성공한다.
그러나......
전출 확정과 함께 습관적인 배웅 자세에 얄팍한 장애인 코스프레를 한 것이 탄로가 나고.
조사관 : -_- 내래 동무를 지옥으로 보내주갔어.
장애인 코스프레를 해서라도 파도가 넘실대고 남국의 햇살이 내리쬐는 지역으로 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음을 알리며, 동시에 베르그라는 프랑스 북부 지방으로 발령이 났음을 아내님께 보고드릴 수밖에 없는 아저씨......
'너 혼자 가셈 ㅇㅇ'
아내는 난 북부에 가서 살기 싫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하나라고 있는 아들은 자기는 북극에 가서 발가락이 얼어붙어가며 살기 싫다 딱 잘라 말한다.
결국 혼자 북부로 갈 수밖에 없는 아버지.
그래도 생전 처음 가는 곳이니 미리 공부도 할겸 서점에 가서 그 지역에 관한 책을 집어들었다.
누가 볼까 두근두근 심장을 부여잡고 책을 펼쳤는데......
헐......
언젠가 태양계에서 인간들 멋대로 퇴출당한 비운의 행성 명왕성에 가서 살라는 통고를 받은듯한 표정.
잠시 후 뒤에 잇는 책장을 붙들다 쓰러지고 만다.
날씨를 봤는데 '눈보라'가 적혀있다. 후덜덜.
'그...그래도 최저 6도 최고 11도니까 그렇게 춥진 않을 거야.'
북부 생활에 참고가 될까 싶어 찾아간 북부지방 출신 할아버지.
알아듣기 힘든 북부 사투리를 쏟아내며 그나마 있던 정신줄을 다 풀어놓으셨다.
춥다니까 기능성 파카는 필수지예.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아니겠지.
이 와중에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는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시면 안됩니다. 경건하게 딱지 받으시지요.
"저 베르그로 가는 길인데...... 너무 가기 싫어서...... 그만...... 천천히 몰았나봐요."
애잔애잔열매를 가득 머금고 핑계를 댄다.
후................................
거기 가서 버섯이라도 먹고 힘내요.
토닥토닥
딱지는 무효입니다
이렇게 오늘 난 북부로 가는 불운의 사나이의 어깨에 짐을 하나 덜어주었다.
베르그에 도착.
우체국 직원들을 소개받는 자리.
직원들은 새로운 국장님이 오신다 방긋거리지만
됐그든-_-
내가 프랑스 북부에 머물 때 늘 표정이 저랬던 것 같다.
쟤 뭥미......?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울고싶다 울고싶다 울고싶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이 역시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라곤 두 어개밖에 없는 북부 사투리를 마구 쏟아내는 할아버지가 단독 면담을 신청하질 않나
점심 먹게 감자깡 자동차라는 곳에 가자며 팔을 잡아끌던 직원들을 따라갔더니 베르그판 김떡순에 데려가질 않나.
하지만 베르그에 정 붙이도록 보살펴주는 직원들이 집에 들이닥치고
정붙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레스토랑에 가서 슈트미(북부 지방 사람과 사투리)를 가르쳐주고 배운대로 바로 슈트미로 주문하는 실습도 하고 북부지방 음식을 먹으며 친해진다.
나 또한 멘토로 붙여준 친구가 집에 초대해서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 아버지께서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꺼내와 이것도 한 잔, 저것도 한 잔 마셔보라며 맛은 어떻냐 눈을 반짝이며 술을 권하셨다. 이 지역에서만 나는 술이다, 이 지역에서만 먹는 음식이다 자랑스럽게 설명하며 접시에 얹어주셨다. 어머니도 더 먹으라고 자꾸 권해주시고 남은 음식 싸가지고 가라고 하시는 모습이 세상 부모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이질감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 다음 내용은 스포랄 것도 없지만 재미가 떨어지니까 여기까지.
내가 프랑스 북부에 머물 때를 떠올려보면......
그 곳은 북부 해안 도시였다. 깐이나 마르세유같은 남부 해안 도시가 아니라.
도착하는 첫 날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몸살감기에 걸렸다.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3월 말까지 전기장판을 '덮고'자야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2차 대전 당시 저 멀리 바다에 파도가 넘실대는 것이 보일 정도로 도시 전체가 폭격을 살벌하게 맞아 재건한 도시라 볼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4월에도 폭풍우박이 왕복싸대기를 날리던 그 곳의 악천후는, 날씨에 관해 어디 가서 주름 펴지도 못하는 영국 출신 선생님마저 '여긴 영국보다 날씨가 나쁘구나' 했다. 이때문에 어지간히 비가 거칠게 내리지 않으면 그냥 -_-이런 표정으로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다녔다.
멀쩡한 사람도 한없이 울적하게 가라앉게 만드는 날씨 탓인지 그 곳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 하면 수다스럽고 쾌활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프랑스에 있어, 하면 와 좋겠다 하는 지인들의 반응에 그저 씁쓸하게 '여긴 너나 내가 생각했던 프랑스가 아냐'
무엇보다 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볼거리.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차고 넘치는 파리와 비교했을 때 모든 것이 너무나 모냥빠져보였다.
서울공화국인 나라에서 서울 혹은 위성도시에서만 살아왔던지라 그 박탈감이 심했다. 내가 못나서 여기밖에 못 왔나 그런 자학까지 했다.
그러다 나는 여기 잠시 머물 뿐이지만 여기에서 나서 평생 여기서 살다 죽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그래도 좀 참자, 이런 생각도 해봤다.
물론 그 도시는 내가 좋아하는 모네가 어릴 적에 살았던 곳이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 몇 명도 그 곳과 연이 있다. 다른 블로거 글을 보니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걸 뒤늦게 알고 '아 정말?'했을 정도로 그 곳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결국 몸도 상하고 말았다.
그 때 이 영화를 봤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치즈 종류만 해도 수 천 가지에 달하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이끄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며 자조하던 샤를 드골의 말처럼 프랑스는 넓기도 넓지만 지역 색깔이 뚜렷한 나라같다. 이방인인 나도 북부 해안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절망감을 느꼈는데 프랑스 남부 사람들은 어떨까 싶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한 뒤 영화의 배경인 북부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막연한 편견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박하면서도 즐거운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북부에 오는 사람은 두 번 운다. 한 번은 올 때, 한 번은 떠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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