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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line

이성계 정도전 크로스


부인. 이런 겨울에는 말이오다. 

징발을 할라고 마을에 들어가면 처음엔… 아들만 보입디다. 

솔나무 껍질을 벳겨 먹었는지 아들 입술이 죄다 쌔까맣디요. 

마당 한가운데까정 들어가 봐도 어른들은 없어. 다들 방 안에 있지비. 

멀뚱한 피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니 배 꺼질까 봐 드러누워서 천장만 보지 않고 뭐이겠어. 

방서 아들 애비를 끌어내곤 헛간 바닥에 떨어진 쌀 한 톨이라도 주워서 수레바퀴에 싣고서 그 마을 어귀를 벗어날라 할때믄. 

온 동네에 아낙네들 아들 통곡소리가 십 리 밖까정 따라옵네. 그러다 잠잠해지믄 무스게 생각이 드는 줄 아오? 

전장터로 끌려가는 저 애비와 뒤에 남겨진 저 아들 중에 언 놈이 먼저 죽을까? 

애비가 먼저 죽을까, 아들이 먼저 죽을까. 언 놈이 먼저 죽을까. 

징발을 한다고 해서 전장터에서 이기는 건 아이오.






- 속죄는 염병하고… 왜놈들이 길잡이 안해믄 죽여 뿐 다는디 나리 같으면 안 했것소?
- 이 꼴로 사느니 혀 깨물고 죽는 게 낫다.
- 아따. 거 말씀 한 번 섭하게 하시네요. 시방 내 꼴이 어디가 어떤디요?
- 네 아버지 황연을 죽인 놈. 그놈의 꼬라지다.
- 닥치지 못혀?
- 발끈하는 걸 보니 일말의 죄책감은 남은 모양이구나.
- 죄책감 같은 소리 하덜 말더라고. 나가 뭣을 잘못했간디?
- 네가 가르쳐준 마을은 폐허가 됐을 것이고 그 마을 사람들 시체가 돼서 까마귀 떼들이 파먹고 있음을 정녕 몰랐다는 것이냐?
- 닥쳐! 지발 고 입 좀 닥치란 말이여! 고것이 어째서 내 죄여?
나 끌고 댕긴 왜놈들 죄고, 빌빌거림서 막도 못한 고려놈이 죄지. 고것이 어째서 내 죄냐고. 난 죄 없어. 나는 아무 죄도 없단 말이여!
어떻게든 살려고 아등바등했을 뿐인디. 살라꼬. 우리 아가 찾고 잡아서 그런 거 뿐인디. 어째 나를 죽일 놈으로 만드신다요.
-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죄가 아니다. 백성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한 이 빌어먹을 나라의 죄다. 네 죄 아니다. 미안하다.





- 자네 같은 사람이 이성계 대감을 도와줘야 하네. 열정에 비해 정치 경륜이 부족하여 실수를 간혹 하시거든.
- 실수?
- 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 명나라에 입조시키자 주장하였다가 망신을 당하셨다네.
- 자네가 곁에서 도와주지 그랬나?
- 외세에 빌어 정적을 제거하려는 것을 어찌 도와? 대의에 어긋나는 짓이 아닌가?
- 그것이 어째서 대의에 어긋나는 짓인가?
- 사람… 고려의 존엄을 깎아 먹는 행위이니 대의에 어긋난다 할 밖에.
- 고려의 존엄 따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 지금 뭐라 하였는가?
- 나였다면 이인임을 죽여 그의 살과 피로 허기진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쪽을 택했을 것이네.
- 이 사람, 삼봉!
- 어제 한 사내가 죽었네. 왜구에 끌려갔다가 왜구가 돼서 돌아왔지.
무고한 백성을 왜구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나라의 존엄에 연연하는 것이 과연 대의일 수 있겠는가?
- 허면, 자네의 대의는 무엇인가.
- 내가 생각하는 대의는 아주 평범한 것이네. 백성들 앞에 놓여진 밥상의 평화.
허나 어쩌겠는가. 하늘이 내게 대의를 내려주셨으나 그것을 이룰 힘은 주지 않았으니.
- 삼봉…







- 지금은 난세이옵니다. 글이 아니라 칼이 세상을 평안케 할 수 있을 겁니다. 해서 무장이 되려는 것이오니 허락해주십시오.
- 그마해라.
- 아버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버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장수가 될 자신 있습니다.
- 글쎄 그만하라 하지 않니.
- 대대로 무장으로 살아온 가문이 아닙니까? 선대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데 어찌 반대를 하십니까?
- 사람 때려잡는 거골장 따위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계승까지 한다고 날뛰니.
- 아버님!
- 네가 전쟁을 아니? 반나절만 칼질을 해도 사람 피로 목욕을 한다.
잘린 모가지에 팔다리에 펄떡거리는 몸뚱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데가 전쟁터야.
거기에는 사람은 없지비. 모두 다 뒤지기 싫어서리 미친 발광을 하는 짐승들뿐이다.
전쟁은 사람 새끼가 할 짓이 아이란 말이다.
내사 바라는 게 있다믄 딱 한 가지뿐이다. 내 대에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게 하는 것.
짐승 짓은 나까지만 하믄 될 테니까 니들은 진정한 사람으로 살도록 해라. 알겠니?





- 아버님께 고려는 무엇입니까?
- 무시게 말이니?
- 고려에게 아버님은 승전을 거듭할수록 견제해야 할 이방인인데 아버님께 고려는 조국입니까?
- 객쩍은 소리는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 어째서 당하고만 계신 것입니까?
- 무시게야?
- 아버님의 힘으로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약해빠진 나라 따윈 능히 무너트릴 수 있지 않습니까? 썩을 대로 썩은 나랍니다. 망조든 나라란 말입니다.
- 무너트릴 힘이 없어서 참는 거 아이다.
무너트리고 나믄 다시 쌓아야 하는데… 내사 그걸 배워두질 못했다.
- 아버님…
- 한 번만 더 그딴 소릴 지껄이믄 용서치 않는다. 알겠니?






백전백승의 명장이지만 촌뜨기로 변두리살던 이성계.

전투에 이기고 돌아왔어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침울해한다. 전쟁터에 끌려가 아들이 먼저 죽을지 아비가 먼저 죽을지 모르는 모습 추가 징발을 하지 않으려 한다. 반나절만 전쟁터에 있어도 애꿎은 피로 목욕을 하는 지옥을 끝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임계점에 달한 것 같다.


뛰어난 학자이지만 강직함이 대단해 PO어그로꾼WER이었던 정도전.

책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도망치는 거 아니냐던 양지의 일갈, 그리고 고난 속에서 따뜻함과 희망을 잃지 않던 양지로 대표하는 백성이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양지의 오빠도 왜구에게 끌려가 앞잡이 노릇을 하다 죽고 만다. 단지 오늘 따뜻한 밥상의 평화를 바랐던 그 백성의 마음에 정도전은 이렇게 답하기로 한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세웠고 무왕이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는데 신하였던 자가 왕을 죽이는 게 옳은 일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인(仁)을 해치면 적(賊). 의(義)를 해치면 잔(殘). 잔적한 자는 임금이 아니다. 

잔적한 임금을 죽이고 성(姓)이 다른 임금을 세우는 것. 그것은 패륜도 찬탈도 아니다. 


설사 패륜이라 해도 찬탈이라 해도 좋다. 이젠 도망치지 않는다. 

세상에 살아 남아있을 수많은 양지를 위해 고려를 죽일 것이다. 

500년 묵은 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나도 괴물이 될 것이다.





괴물 같은 고려 무너뜨릴 파티원 구합니다 (1/1,392)


왕재를 구하러 나서는 도전이형.





- 내를 살리려고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기우.
- 소생에게는 자존심 같은 거 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은 지금의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도부터…
- 아이오… 그것부터 말해보게.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구먼.
-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소생이 열망하는 대업이 있습니다.
- 대업이라니?
- 장군과 함께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해서 어떻게든 장군을 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장군, 소생과 함께 난세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 새로운 세상?
- 새로운 세상에서 장군께서 하셔야 할 일이 이 안에 있습니다.
새로운 성씨의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 새 왕조의 태조가 되어달란 말입니다.

- 간나새끼구나. 이. 간. 나. 새. 끼.






이. 간. 나. 새. 끼.




그러다 성계오빠에게 '님, 새 나라의 태조가 되는 거 어때여?'했다가 간나새끼라는 욕이나 듣게 되오...☆


하지만 역피셜이 다 해주실 거야.

이성계 정도전 크로스!


연출, 연기, 브금, 대사 서로 주장하고 난리났쟈나. ㅠㅅ

양지 첩으로 들이고 망테크 타는 거 아니야 조바심냈던 나란 잉간, 손들고 벌설게요.

이성계의 미륵불 누명 에피와 정도전의 각성 계기를 절묘하게 엮을 줄이야. ㅠㅠ

이성계-정몽주, 정도전-정몽주, 최영-이성계에서 서로 품은 뜻이 달라 엇갈리는 순간을 매끄럽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왜 이들이 함께 할 수 없는지, 혹은 이들이 함께 하게 됐는지.


현재 KBS에서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은 정도전(아, 그리고 '그날'도)밖에 없다.





ⓧ 108님의 움짤과 대사 정리 덕에 정도전을 복습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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