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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to/The days

경찰청 인권 보호 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 보호 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6.10이 며칠 뒤인데 기념 전시회는 11일부터인가 시작이라 남영동에 갔다.

한때 지하철로 자주 지나가곤 했던 역인데, 전류 변경인가 아무튼 그 변압 차이 때문에 에어컨과 조명이 꺼져 안내 방송이 나오던 구간이기도 하다.

지하인 서울역에서 처음 지상으로 나오는 역이기도 하고.







남영역 주변 안내도에는 경찰청 인권 보호 센터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

학원도 표시되어있는데, 경찰청 인권 보호 센터가 표시되어있지 않다니!

남영역부터는 코레일 관할이라 코레일에 민원을 넣기는 했는데, 어떻게 될는지.



(+)

6월 10일, 민원 답변이 왔다.

공공시설물은 무료 표기, 기타 상업목적은 유료 표기되고 있으며, 안내도를 관리하는 별도의 운영사에게 정비 요청을 했다고 한다. 

시간 날 때 확인하러 가야겠다.








예전에 굳게 닫혔던 철문.



인권 보호 센터로 들어가는 입구에 여러 사람에 둘러싸인 낯익은 사람이 보이길래 갸웃갸웃했더니 조국 교수였다.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이자,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사회 참여의 계기가 되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다른 분들과 말씀 나누고 계셔서, 살짝 '안녕하세요'하고 지나쳤다. 혼자 계셨어도 딱히 뭐 드릴 말씀은 없지만. ^^;



1층엔 센터 건립 취지와 예전 대공분실 역사를 설명해놓았고,

4층이 박종철 기념전시실,

5층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던 예전 조사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고 김근태 의장님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 인사가 잔혹한 고문을 받았던 조사실이다.









박종철 기념전시실에는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고 5.18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6월 민주 항쟁, 6.29 선언에 이르기까지 당시 시대 배경을 사진과 글로 설명해놓았다.










박종철 열사의 사진과 편지, 생전에 봤던 책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 사진은 사망진단서와 추모 리본.







박종철 열사가 옥중에서 부모님과 누나에게 썼던 편지.

한 줄 한 줄 읽는데 마음이 쓰렸다.





한 명에게라도 더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알리십시오. 내가 왜 구속되었는가를, 저들의 폭력성을, 우리들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고발하십시오. 그럴 용기가 없으면 마음 속으로나마 바깥에서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친구들과 저처럼 싸우다 갇혀 있는 친구, 선배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라도 쳐 주십시오. 엄마 아버지의 막내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5층에 올라갔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 결국 숨진 조사실 509호.

509호만 원형대로 살려뒀고, 나머지는 싹 바뀌었다. 고 김근태 의장님이 조사, 고문받았던 515호도 역시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조사실 안쪽에 붙은 비상 스위치.

'비상시에만 눌러 주세요'

인권을 말살하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비상이 아니고 무엇이지?












좁은 창문.














영정 앞에 놓인 전태일 평전.
그리고 밀양 송전탑 저지하는 분들이 다녀가셨다.












그 때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 너머 태극기가 참말 낯설고 무섭다.















5층 조사실은 모두 같은 모양에, 문을 서로 어긋나게 내어 맞은편에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감시할 수 있게 뚫어놓은 구멍 하나만 있을 뿐.








조사실 밖에 있는 스위치.

창문은 좁아 자연광을 차단하고, 조사실 밖에서만 조명을 조절해 빛과 어둠마저 장악했다고 한다.









복도 끝 계단이 있는 곳인데 지금은 막아놓은 모양.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막아놓은 좁은 이 공간에 잠시 들어가 있었다.

막아놓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과 때때로 들어와 멈췄다 다시 떠나는 기차 소리만 깜깜한 공간에 파도처럼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내 발로 들어오지도 못했고,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던 야만과 잔혹의 공간.















눈을 가린 채 끌려 올라가는 계단은 나선형이라 몇 층인 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내려갈 때 이 계단으로 내려가 봤는데, 손에 땀이 나고 어지러워 여러 차례 주저앉을 뻔했다.






















조사받는 사람을 끌고 들어갔던 뒷문.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진다.








'죽음의 건물'을 두른 검은 벽돌과 까만 콜타르와 아스팔트 사이,  암울한 역사를 딛고 풀이 자라난다.

'넌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곳에 뿌리 내렸니?' 너무나 신기하고 대견하고 고마워서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 왔다.











그때는 굳게 닫혀있던 아주 좁은 창문이 이제는 열린 채, 좁은 창문을 다 써서 햇빛을 흡수한다.

































남영역에서 본 건물 모습.





1980년 남영동에 끌려갔던 유숙열씨가 이근안에게 쓴 편지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191647531=940100



대학생 인권학교 후속 모임 -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와서 (인권연대 블로그)

http://hrights.tistory.com/49





(+) 아, 밀양 어르신들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셨을까 궁금했는데,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로 오셨다. 응원합니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구성된 ‘밀양 765㎸송전탑반대 4개면주민대책위원회’가 정부 당국과 한전의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 강행에 맞서 삶의 터전과 생명권을 지켜내기 위해 결연히 투쟁함으로써 공사 강행을 잠정 중지시키고, 주민 참여 보장 등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에 적극 기여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90628.html







@경찰청 인권 보호 센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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