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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to/The days

故 장준하 선생 겨레장 발인제


2013년 3월 30일, 故 장준하 선생 겨레장 발인제 다녀왔습니다.









분향소에 다녀오지 못해서 발인하는 날은 뵈려고 갔습니다.

아홉 시 조금 넘긴 시간이라 뛰어갔어요.
















생각보다 사람이 없더군요.




시청광장을 꽤 채웠으리라 기대했는데......

형광 연두 조끼 입은 경찰이 더 많았습니다.





솔직히...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추모 서명이 저조했던 걸 봐서 기대를 버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발인제를 마치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만장을 들어서, 가는 동안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습니다.

자원봉사자 한 분이 만장 들 때 끼고 들라며 목장갑을 주셔서 고마웠어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문안으로 꺾으며 청와대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살아야 할 사람은 죽고, 죽을 때까지 사죄해도 모자랄 사람은 뻔뻔하게 살아있고,

독재자의 딸이 청와대 주인이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경교장 앞을 지나가며 또 눈물이 났습니다.

















새문안 쪽에서 지체되었는데,

샛길에서 나오는 차들이 만장 행렬을 향해 일제히 경적을 울려대더군요.





추모의 경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한시가 바쁜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경적을 울려댈 일이었을까요.




노제 행렬을 통제하며 차선 하나를 좁혀야 했는데, 경찰들끼리 '안쪽으로 밀어야 돼.'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장준하 선생과, 마지막 가시는 길을 추모하는 시민이 저들에게는 그저 그 정도뿐이구나.'









그냥 다 서글펐습니다.


발인제를 통제하러 나온 경찰보다 훨씬 적어 보였던 사람들,

만장 행렬에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던 차들,

시민을 안쪽으로 밀어야 한다던 경찰들.


짧은 시간에 느꼈던 자그마한 서글픔과 한스러움이, 그분과 유가족, 그리고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많은 분의 아픔에 결코 비할 수 없죠.


그래서 더 서글펐습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제를 지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도착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큰아들 장호권님과 손자분, 그리고 장준하 선생의 영정.

























하늘을 올려다 보실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뵈러 파주에도 가고 싶었지만, 다른 일이 있어 노제까지만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김원웅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장의 방명록 글.












문재인 의원님의 글.










-



'죄송합니다.' 혼잣말 한 마디 대신,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옆 사람에게 장준하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고, 앞으로도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그 분께 진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1편 '장준하가 사라진 나라' 추천할게요.


'의문사'에서 '타살'로 밝혀지는데 40년 가까이 걸렸고, 아직도 '누가' 죽였는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장준하 선생의 '삶'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역사가 제자리를 잡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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