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펼침막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이는 데 약속하겠다는 협약을 기획했는데 가장 먼저 함께 한 진보신당 인천시당에 이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그리고 바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후보 쪽에서 연락이 왔다. 구체적인 협의 전에 다소 앞서 보도가 나가는 바람에 조금 당황했지만 내심 기뻤다.
6월 2일에 투표하고 야근하다 시청 앞 광장 가서 신나게 놀다 집에 와서 새벽 3시 반까지 개표 방송을 보다 잠들었다.
아침이면 서울시장, 교육감 모두 훈훈하게 바뀌어 있을 거야 행복하게 눈을 붙였다 날벼락을 맞았다.
하지만 아침에 선거 펼침막 수거하고 제품 제작하는 장면 취재 약속이 너댓 건이 있기에 비몽사몽 상태로 서대문에 있는 곽노현 교육감 선거본부 사무실로 향했다.
티비에 그림이 나와야 하니 크레인 와서 떼어내고, 길가에 걸린 펼침막을 가위로 자르고 날도 더운데 다들 고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펼침막이 트럭 두 어대 분량이 넘었다.
김상곤, 곽노현 교육감 이외에도 박명기 후보 펼침막도 받았다.
협약 내용에 펼침막 만든 쪽에서 수거, 운송 비용을 부담하기로 되어 있었고, 교육감님이 다시 한 번 우리 걱정없이 잘 전달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단다.
선거 전에 진행하면서 신기하게도 파란나라당에서는 연락이 거의 없었고, 있어도 비용 부담 부분을 말하면 다들 전화를 끊었던 것과 달랐다.
워낙 양이 많아 놔둘 데가 없어 고민했는데 다행히 아는 분이 댁 뒷편에 놔둘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이걸 정리하다보니 땅에는 노란 펼침막이 가득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도 노랗고 온 세상이 노랗다며 교육감님을 뵈어야겠다고 했더니 선본에서 취임식 초청장을 보내주셨다.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극소수의 천재들이 나머지를 먹여 살린다며 영재, 엘리트 교육에만 집착하는 가운데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글귀가 뭉클했다.
원래는 펼침막으로 기념이 될만한 걸 만들어 판매하거나 나눠주려고 했는데 선거법상 어려워 접었다.
박재동 화백께 부탁해 그림도 그려주셨는데 결국 쓰지 못하고 취임식 펼침막에만 인쇄된 걸 봤다.
이도 저도 안되니 대신 노란 양복을 해드릴까 넥타이를 해드릴까 하다가 꽃다발을 하면 어떨까 만들기 시작.
거의 노란색이었는데 장미를 하자니 노란 장미의 꽃말이 '질투'였던 게 기억나 포기.
'용담'은 '정의'라는 아주 딱 들어맞지만 꽃도 작고 만들기 까다로워 포기.
수선화는 '고결'이란 꽃말을 지니고 꽃 자체도 예뻐, 수선화 위주로 만들었다.
카라도 만들고 튤립도 만들고 빨간 부분은 장미로도 만들었다.
여지껏 펼침막은 다 버려지고 게 써 있던 공약도 버려지곤 했는데,
이번엔 버려지지 않고 꽃다발로 다시 태어나듯 서울시민, 학생, 교사와 한 약속이 꼭 피어나길 바란다는 뜻을 담앗다.
사심 가득 담아 팬레터도 써서 꽃다발에 끼워 넣었다.
여러 명이 고생하여 거의 밤을 새워 완성.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포장하러 꽃집에 갔더니 '아니 아가씨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어.' 다들 너무나 신기하고 예쁘다며 구경해서 뿌듯하기는 했지만...
서울교육청에서 열린 취임식.
취임식 전에 소박하지만 감동이 있고 품위가 있는 취임식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교육감님과 선본.
단상을 경계로 위, 아래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조차 싫다고 하셨다는데 여건 상 교육청 강당에서 진행.
1부는 국민의례, 취임사 등 평범한 형식으로 흘러갔다.
꽃다발 전해드릴 기회를 계속 엿보았지만 정해진 순에 없었을 뿐더러 중간에 뛰어나가 꽃다발 안길 강심장이 아니었다.
1부 끝나고 높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길래 교육감님도 나가서 2부에는 참석하지 않는 줄 알고, 사람들을 떠다밀며 허겁지겁 달려나가 꽃다발을 드렸다. 꽃다발을 막 들이대며 교육감님 선거 때 쓰신 걸로 만든 거라고 했더니 너무 깜짝 놀라서 잠깐 바라보다가
'아이고 고생 너무 많았어요. 안 그래도 이야기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정성껏 해주다니... 고마워요.'
웃으며 먼저 악수를 청하셨다.
2부는 깨소금 토크쇼라 해서 무대 위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 학부모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하고 중간중간 공연을 했다.
박재동 화백도 암고나메큐댄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공연할 때 아빠미소로 흐뭇하게 지켜보다 아이가 율동하며 움직이니 바로 마이크선을 치워주는 모습.
2부 토크쇼 때도 계속 수첩에 메모하고 마무리 말씀할 때 학생들 멘트 하나 하나 짚으면서 본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배우게 되어서 좋다고, 현장에 가면 바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인만큼 현장 소리 잘 듣겠다고 하셨다.
정말 학생, 학부모, 교사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4년(혹은 그 이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한 번 더 굳혔다.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며 같이 사진 찍는 모습.
취임식 끝나고 며칠 뒤 참석한 사람들에게 보낸 답례 메일에도 아이들과 키 맞춰 찍은 사진이 함께 왔다.
취임식 끝나고 다들 사인해달라 사진 찍어달라고 몰려들어서 다음 일정으로 가기 힘들정도.
수행원인지 공무원인지 모르겠는데 한 분이 짜증을 참지 못하고 다들 사진 찍고 사인받고 싶어한다고 안 그런 사람 없다고 다음 일정에 차질이 너무 많다며 좀 화를 내셨는데,
교육감님이 딱 잘라서 '말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데 잘 들어줘야 한다'며
상대방에게는 얘기해보라고 괜찮다고 한 사람 한 사람 눈 마주치고 귀 기울이며 다 들어주고 자상하게 답변해주셨다.
사실 제가 사진을 못 찍어서 나중에 사진 좀 찍어달라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워낙 사람들도 많고 수행원 아저씨들도 무서워서... 바쁘시니까 다음에...말을 꺼냈더니
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좋지, 계속 고민하셨다.
그 뒤로 사진을 부탁하진 않았지만 집무실이든 어디든 꽃다발이 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구속까지 치닫는 이 사건을 보며 너무나 안타깝고 화가 난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도 아니고, 협약 진행하며 선본 관계자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나, 취임식에서 나름 매의 눈으로 스토커돋게 보고 들었던 모습이 전부였다.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모습만 봐도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해 처음 뉴스가 나왔을 때부터도 보도 내용을 믿지 않았다. 그 뒤로 흘리고 받아쓰고 아니면 말고, 이렇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어쨌거나 물러나라 하는 가운데 답답하기만 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해도 피의 사실 무차별 공표에 다 가려지고, 평생 살아 온 궤적과 마음 씀씀이에 비추어 말하면 비논리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이며 맹목적 추종 광신 집단으로 비아냥거리가 되는 게 지금 숨 쉬는 현실.
그 사람 그럴 사람 아니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민중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던 전두환도 측근들에겐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비유를 서슴없이 갖다대던 언론인의 코멘트에 경악했다.
사람 속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인정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제하더라도, 적어도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진보가 가진 최후의 보루가 도덕성이라 해도 최소한 보장이 되지 않는 무법천지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김유신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베었다는 비장함과 꼿꼿함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원칙도 없고 무정할 뿐이다.
수선화는 언제나 깨어나는 봄과 도래하는 자연의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수선화는 오늘날까지도 죽음의 어둠을 극복한 것에 대한 비유이다. 수선화는 무덤 위에서 많이 자라며, 아라비아권의 많은 묩석에서 부활의 상징으로 쓰였다.
- Flower&Tre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나무 이야기,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씀, 가운데
취임식에 다녀온 다음 바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취임식 후기와 꽃다발 이야기를 올린 이래로 정작 개인적으로 공개한 적은 없는데 이제사 올리는 것도 뒷북이라 마음 아프다. 기쁘게 한 송이 한 송이 만들어갔던 수선화 꽃말을 다시 찾아보며 그 꽃말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 아주 미약하고 현실에 나가 별 힘도 되지 않을 걸 잘 알고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다. 허나 나는 간절히 바란다. 반드시 다시 살아나기를, 그리고 그 교육 철학과 정책이 더 활짝 꽃피우기를.
'Murmur'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봉사정신을 높이 사요, 그러니 가격을 깎아주세요 (0) | 2011.10.19 |
---|---|
간만에 (0) | 2011.10.08 |
퀵퀵퀵 (0) | 2011.07.25 |
BEN L'ONCLE SOUL - SOUL MAN (0) | 2011.07.18 |
문재인의 운명 (0) | 2011.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