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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신비가든


성균관스캔들이 내게 엿을 준 다음 허탈해하던 차,
시크릿가든이 내게 다가와 '님은 이제 이 드라마 덕후'라 불러주었다.

김은숙 작가의 바로 전 작품인 시티홀 앓이를 했기에 당연히 봐야지.
파리의 연인은 결말이 잘 기억나지만 '아 ㅅㅂ꿈' 결말이라고들 그러고.
프라하의 연인도 나름 열심히 봤고,
연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온에어는 파리에서 빈대 물리고 골골댈 때 민박집에서 내리 몇 시간씩 봤고,
시티홀은 그 때 터진 일들과 맞물려 가슴에 참 와닿았던 드라마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최신작이 가장 재미있듯,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또한 최신작이 더 좋은 것 같다.
뒷심 부족이라는 비판때문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재미있게, 짜임새있게 썼다 하던데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듯.

텐아시아에서 김은숙 작가 속 여성과 남성 사이를 분석한 비평을 봤는데 꽤 공감한다.
남자는 제 멋대로인데 여자는 결혼하려고 안달복달(라임이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 드라마들 대부분 그렇듯, 사랑하는 연인이 온갖 장애를 이겨내고(주로 계층 갈등, 시월드 등) 결혼에 골인하는 것이 해피엔딩이라면, 결혼 뒤에는 갑자기 웰컴투불륜월드가 펼쳐진다. 살인 방조를 하질 않나, 대리모도 나오고 점 찍고 복수하는 등등 아주 잠시만 채널을 머무르게 해도 브라운관에 독기가 덮히는 그런 막장 드라마들. 드라마를 무릎 꿇고 보기에는 이제 관절을 아껴야 할 때라서 패스.

여성이 아무리 당찬 캐릭터라 해도 남성의 도움이 결정적이고 그 남자가 어떤 막말을 했어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앉은 바닥은 편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를 깨는 상황과 대사들이 있어 계속 보게 된다.
'와 짱이다. 그럼 나 신데렐라 되는 거야' 대놓고 신데렐라를 말하며 비꼬는 라임에게 주원은 '없는 듯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줬으면 좋겠는 인어공주'를 말하다 싸대기를 찰지게 맞는다.
'기껏 해야 청소기나 타러 온 여자인데 2천원때문에 종일 설렌' 자신과 그 여자의 상황때문에 화가 나서 막말을 하고는 옷 테러를 해놓고 포장해서 옷장 가득 채워놓는 혼란과 후회는 삼식이보다 더 싸가지없지만 솔직하다.
'계급 높은 사람이 원하는 건 딱 두 가지, 불평등과 차별. 군림할 수 없다면 철저히 차별받기를 원한다'며 본인 또한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냉정하게 설명하는 주원. 대놓고 불평등과 차별을 말하고 왜 그것을 원하는지 꼬집는 대사가 시원하면서 더욱 서늘하다. 어쨌든 극 중에서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찬물 한 잔을 내민다. 그걸 부어버리진 않고 마시고 속 차리라고.
현실에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은데.쯧쯧'하는 류의 말을 드라마 속에서 하고 있다. 그것도 그 많이 본 듯한 로맨스물에서. 그래서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듯.

주원과 라임이 서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결말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봄에 눈 녹듯 갑자기 시월드가 개과천선해버리는 일은 더욱 없었으면 좋겠고. 사람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도 그동안 살아 온 관성때문에 바뀌기가 힘들다는 걸 그래도 언뜻언뜻 보여주고 있으니 그리 불안하지는 않지만.

자신은 상업 작가이지만 노희경 작가와 같은 좋은 드라마 작품도 꼭 보라고 한 김은숙 작가의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을 느꼈다. 우리가 보는 그의 드라마는 여자의 마음을 아주 잘 꿰뚫는 로맨틱 드라마 한 편일뿐이지만 그 드라마를 쓰는 품은 상당히 넓은 작가임을 느꼈다.


아 맞다.
배경음악 가운데 셜록 OST 가운데 셜록이 택시 잡으러 갈 때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 있는듯.
음악감독님도 셜록을 보셨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