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가정,가사 시간에 코바늘 뜨기 단원이 있기는 했다. 대바늘 메리야스 뜨기까지는 어떻게든 하겠고, 나노 마인드를 따라 바늘땀 촘촘하게 손바느질도 잘 해갔고, 자수도 그럭저럭 해갔다.
그런데 코바늘은 정말 못하겠더라. 양말을 떠오라고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가정 숙제=엄마의 숙제 공식에 입각해 여사님이 예쁘게 떠주신 걸 제출했다.
홍차에 발을 들인 다음, 찻잔과 소서에 하얀 도일리를 까는 게 지상 최대 로망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큰 마음 먹고 교보문고에서 레이스 뜨기 일본 원서를 샀고 패기 넘치게 코바늘을 잡았다.
여사님에게 '너는 바늘을 이상하게 잡아','너는 반대로 뜨고 있다'는 소리나 들으며 동그랗게 뜨는 것 하나도 못하고 바늘을 여러 차례 내던졌다. 그리고 '엄마 나 몇 번 몇 번 떠줘' 슬그머니 메모지를 건넸고, 여사님은 빠른 속도로 떠 안겨주셨다.
이렇게 하다간 사랑스러운 내 딸이 '엄마 학교에서 코바늘로 양말 떠오래'하면, '느이 외할머니께 해달라 그래.'
글쎄 내 인생에 가정 숙제를 대신 해줘야 할 딸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내 로망을 이루고 싶었다.
주) 저는 분명히 하늘색 레이스를 뜨려고 시도했습니다.
나뭇잎 꼬라지하고는.
이건 적도 부근 바나나 나뭇잎이지 온대 기후에서 자라는 활엽수 새싹이 아니다.
유전자 조작 꽃이 따로 없네.
......
스스로 이런 말을 쓰게 될 줄 몰랐는데 손이 고자였어요.
그러다 얼추 비슷하게 뜰 수 있게 되었고,
자신감을 충전-하고 보다 가는 실과 보다 가는 바늘을 집어들었다.
마루 오빠가 최진철 아들인 거 알고 각성해서 어둠 속에서 표정 변할 때 덜덜 떨어가며.
그리고 이제 제법 뜰 수 있다.
내 손은 고자가 아니었나봐요. '내손고자설' 가설 입증 실패.
이거는 뜨다가 끝으로 갈수록 지루했다. 끝에 뾰족뾰족 뾰루지같은 거 떠놓고 보면 예쁜데 뜰 때는 영 귀찮다.
카시트, 식탁보, 커튼 뜨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예쁜 도안이 있는 책을 찾는데 일본 책은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봐도 기호를 읽고 뜰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한 설명이 실려있다. 단계를 쪼개고 쪼개서 일러스트와 실사로 설명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책은 그에 비해 설명이 덜 꼼꼼하고 작가의 자랑에 무게가 좀 더 실려있는듯 하다. 우리나라 책을 보고 익힌 게 아니라 '한 길 긴뜨기' 이런 기호가 어떤 건지 모른다.
자료 검색하다 느낀 건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그런가,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 옷, 가방 등 참 다양하게도 만들더군. 우리 여사님은 외할머니가 집안 일에 워낙 치여 눌러 앉아서 뭘 뜨고 꿰맬 틈이 없었기에 스스로 가정 숙제를 하고 나중엔 동생들이 결과물을 갈취해가기까지 했다지만.
코바늘을 잡으면 TV를 바라볼 수 없기에 TV는 라디오로 매체 전환을 한다.
자막이 가득한 TV를 떠나 소리로만 들으니 그 소리로 이야기의 재미를 가늠한다.
자막 비중이 이렇게나 컸구나.
그래도 보통은 라디오를 듣는데 음악도시에서 짜머가 '왜 돈이 덥대?!' 버럭하거나, 라천에서 혈님이 자뻑 멘트를 날릴 때마다 뜨던 도일리에 침을 흘리곤 한다.
지금까지 느낀 코바늘뜨기의 장점
도구가 단출하다.
덥지 않다. 여름에 뜨기 적합.
떠놓으면 예쁘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단점
눈이 침침하다.
(그래서 눈 영양제를 좀 열심히 먹어줘야겠다)
손이 아프다.
자라목이 된다.
(그건 내가 토할 때까지 떠서 그래요)
그리고 타조사 주문해서 오고 있는중. 아이고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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