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방 열기 전
따스한 아침 햇살과 달리 수심이 만만찮은 하얀 곰
엿봐서 죄송.
예전 단독주택 살 때 이후로 가까이 두고 본 적 없는 장독들.
요즘엔 '신들의 만찬'에 나오는 끝도 없는 장독이나 본다.
산 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 그리고 요즘엔 보기 드물어 어쩌다 보면 마냥 반가운 목욕탕 굴뚝.
빨랫집게 총총총.
다시 책방 골목으로 내려왔는데 아직 문 열기 전인 가게 옆에 놓인 빈 책장.
사진은 마치 여름 낮처럼 나왔는데 추워서 손을 호호 불었다는 게 함정.
누군가 말해야 한다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새 책을 파는 곳은 그렇지 않은데, 헌 책방에만 가면 모든 책에 사연이 있으리라, 옆에 있는 책도 무슨 뜻이 있어 옆에 있으리라 뚫어져라 보게 된다.
우리 집에도 있는 015B LP.
옆에는 에어 서플라이였던듯.
어렸을 때 봉고차에 책을 싣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는 이동 책방에서 책을 자주 빌렸던 엄마를 따라 같이 빌려 읽었던 책들도 눈에 띄었다. '오싱'이나 '빙점' 등등. '오싱'은 책을 읽고 얼마 뒤 TV에서 영화가 나왔는데 오싱이 너무 불쌍해 막 울었다. 홋카이도에 갔을 때 미우라 아야코 기념관에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넉넉치 않아 갈 수 없어 아쉬웠다. 둘 다 내용이 가물가물해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도 책들이 가득했다.
나중에 여기서 책값을 주고 받았다.
건너편 책방은 가보진 못하고 사진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하시는 책방인 듯 한데, 이것 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정답게 답해주시는 할머니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사회과학책 쪽.
시간이 지나고 정말 별 거 아니었구나싶은 문제들도 있었고,
시간이 이만큼 지났어도 여전히 해결이 안되는 문제들이 그 곳에 있었다.
MBC 퀴즈아카데미, 저 책은 예전에 대학 다니던 삼촌들 책장에서 꺼내 뭔지도 모르고 훑어봤던 책.
재미있는 **여행 시리즈도 몇 권, 우리집에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반가웠다. '논리야 놀자' 이것도 여러 권 있던데, 어쩌면 우리집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책들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새로운 생각은 책상 앞이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떠오른다.'
파묻힐 정도로 많은 책들 가운데 쉼표처럼 찍힌 저 글귀.
처음에는 손이 베일 정도로 새로웠지만 시간이 흘러 의문도 느낌도 보태고 그러다 어쩌다 이리로 흘러들어 온 책들이, 저 글귀 덕에 더 힘을 얻는 듯 하다.
와, 초원의 집도 있다.
이철수 판화가 책도 있었다. 아른거리네.
시간은 지루하게 흐른다
장례의 순간이 지나듯이
언젠가 너는 울리라
눈물로 가는 이 시간조차도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고
- 아폴리네르의 시 <건강을 위하여>중에서
모여있는 헌 책들이 다 사연이 있는 듯 한 것처럼, 곳곳에 있는 글귀들도 다 나에게 기다렸다는듯 할 말을 한다.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던 차 마시는 공간.
여기서 최종규 선배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발견해 반가웠다.
날이 쌀쌀해 잊고 지냈던 이름, 예전에 열심히 읽었는데 지금은 까맣게 잊은 책들이 조용히 앉아있는 이 골목에 잠겨 있던 시간이 따스했다.
2012.2.17 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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