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가지 못할 것 같아 일 끝나고 서둘러 갔다.
목요일인데 괜찮겠지,하며 버스를 탄 내가 등신이었다.
결국 녹사평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하이힐 소리 크게 내며 인상 긋고 쿵쿵 뛰어가던 이상한 사람.
교대역과 강남역 중간에 있었고 교통은 편하지 않았다. 갔다 오는 내내 속상했다. 일해공원이니 박정희시로 이름을 바꾼다느니 하면서 정치적 살인을 당한 대통령의 추모전이 열리는 장소가 이렇다니. 그나마 이 장소 섭외해서 운영한 분들이 고생스러웠을텐데.
7시 반까지 연다고 했는데 7시 20분에 헉헉대며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내가 들어온 다음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당당한 눈빛과 표정에 힘이 나면서도 사진 속 이 사람의 운명이 어떠하리라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터라, 온전히 사진의 느낌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뒤돌아 이 두 그림을 보자마자 눈물이 계속 흘렀다.
끝내지 못한 초상화인가, 그것도 얼굴이 없는 초상화.
그토록 한 사람을 사람들로부터, 아예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려하다니.
생전에 완성한 초상화란다.
앞의 그림과 함께 이번 전시회에 가장 핵심 작품이라고 설명을 해주러 다가온 자원봉사요원 앞에서 그냥 울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걸었는데 우는 거 참 어이없지만 그 분도 다 안다며 휴지를 가져다주었다.
가시면류관.
사회생활에 금과옥조가 된다는 격언 시리즈 가운데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던데
언제는 왕관이었나 싶다.
가시 가득한 면류관을 씌워놓고 불편해서 이리저리 매만지면 격 떨어진다 손가락질했고
피를 흘리더라도 면류관을 이고 지고 가려고 하면 내려놓으라 뒤흔들었다.
다시 달력을 11번 넘기니 5월이 된 이 시절에 마음에 꼭 담아두어야 할 말씀.
엄청난 숙제를 남기고 간 것이다.
그 숙제는 수련장,전과,참고서,모범답안 그 어떤 것도 없고 이제 더 이상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숙제.
개인적으로는 작년 이 맘때쯤 이 일을 시작할 때쯤이었는데
헬기가 뜨며 소환되는 걸 중계하던 걸 국밥집에서 티비를 통해 봤다.
나오지 못하고 버스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소식도 들렸다.
입으로 밀어넣던 국밥이 가슴에 얹혔다.
가둬놓고 끊임없이 손가락질했고 결국 브레이크를 풀어놓고 그 버스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을 버리라는 문장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자살로 포장한 타살, 정치 살인이라고 하지만 결국 나와 우리의 안일함이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외면할 수는 있고 부정할 수도 있겠고 누가 갚으라고 차압딱지를 붙이지도 않는 그런 빚이지만.
어떤 문장으로 주렁주렁 포장하는 것보다 아이가 쓴 말이 맞다.
힘들면 도와주면 되는데 왜 우리는 힘들다 생각하지도 않았을까.
이렇게 머리도 휑하고 이가 다 빠져 오물거릴 때까지...
아방궁 저택이다. 참나.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진짜?하며 낚였다.
일 안 하니까 노니까 좋대요,라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메모
살아 계셨다면 손을 잡아볼 수 있었을까.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싶다.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들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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