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15 청계광장
이날은 3·15 부정선거 54주년 민주수호 국민대회였다.
4시부터 유우성씨와 민변, 서기호 의원, 최승호 PD 등이 선거 조작과 간첩 조작과 관련하여 설명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됐으면 일찍 갈 걸 그랬다.
그나마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설명은 잘 듣지 못했다.
이 건은 그동안 뉴스타파나 다른 방송을 통하여, 가장 최근에는 김어준의 KFC 1회를 들으며 따라갔다.
http://www.podbbang.com/ch/7339?e=21357280
유우성씨가 말을 잇지 못하는 대목에서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이날 저녁 때 바람이 참 많이 불어 춥더군.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아니라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불러야 함이 마땅하다. 지방선거 겨냥한 프레임 짜기쟈나..)을 보면 대체 우리가 2014년에 살고 있는지 달력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읽는 유인물에 제목으로 있는 변호인이 눈에 띈다. 80년대 부산 최대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라 이번 간첩 조작 사건과 닮은 점이 많아 영화가 내려가고도 계속 회자하는듯.
세찬 바람에 깃대가 기울었다.
54년 전 부정선거에 항의했던 학생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청년들.
천도교청년회, 한국청년회 등 청년들이었다. 제 2의 4·19 혁명을 목표로 활동할 결의를 발표했다.
54년 전 3·15 부정선거에 항의했던 안현수 선생님.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인 분인데 당시 선거가 어떻게 조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의 의미를 상기해주셨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책도 쓰셨네.
3인조 공무원 공개 감시 투표- 기표소에 들어가서 투표하라고 했을 때,
"선거라는 게 비밀투표가 생명인데 공개투표 못하겠소."하고 민주당 장면씨에게 표를 찍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가 날 툭 치면서
"당신 미쳤소? 공무원이 어떻게 민주당에 표를 줄 수 있소? 당장 당신 파면감이야!"
그래서 제가 "야, 이 개새끼야! 어디라고 들어와? 여기는 신성한 투표소야 당장 나가!" 밀쳐내고 나와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집에 가는데
학교 급사가 와서 "선생님, 학교에서 안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급히 보잡니다."
교장 선생이 죽을상이 되어 "안 선생 때문에 나 죽겠소. 꾸중 들었소. 당장 사표 쓰시오."
더러워서 사표 쓰고 나와 가만 생각해보니 힘 없는 정의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학진학해야겠다 결심해서
동기보다 10년이 늦었지만 69년도 서울대 최고령 합격했습니다.
54년 전으로 돌아가서 3월 16일 신문에 어젯밤 마산 시민들이 부정선거에 항의해서 시위를 했다. 시위하는 시민에게 경찰이 발포해 몇 사람이 죽었다.
'정의는 살아있구나. 나 같이 직장 그만두는 거야 별것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시내 시민 속에는 간첩과 빨갱이가 들어있었다.', '빨갱이 선동에 의해 시민들이 시위했다. 엄단에 처하겠다.' 이럽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지금 간첩조작, 용공몰이와 본질이 같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빨갱이하면 꼼짝 못하고 숨죽이고 있었는데, 4월 마산상고 김주열씨가 눈에 최루탄이 박혀 마산 앞바다에 시체로 떠올랐습니다.
마산 시민들이 격분하여 제 2차 시민봉기가 일어났고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의로운 학생들이 1주일 후에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 4.19 혁명입니다.
마산 의거는 부정선거만 있던 게 아니라, 마산 시민들이 봉기한 의거의 날이고, 4.19 기폭제가 된 의미있는 날입니다.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자기 출세 위해서, 생활고로 인해서 변절한 4.19 의사들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지금도 의연하게 꿋꿋하게 민주화 투쟁을 하러 깨끗한 삶을 사는 존경하는 동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3.15 때는 바보 병신이 되었다가 4.19 때 다시 영웅이 된 사람입니다.
지금도 미력하나마 4월 혁명 동지회에서 같이 활동하며 우리 동기들이 촛불집회에 빠짐 없이 30년 넘게, 적게는 10년 동안 오고 있습니다.
3.15 교훈은 무엇인가?
마산 1차 봉기가 일어났을 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선거 부정에 대해 사죄를 하고 물러났으면,
4.19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들 희생도 없었을 거고, 하와이에 망명가지도 않았을 거고, 아들도 총에 맞아죽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교훈 삼아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간첩조작, 용공몰이에 대해 사과를 하고 남재준을 해임하고 구속시키고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가 힘으로 퇴진시켜야 합니다. 퇴진 퇴진 박근혜.
안현수
1939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부산사범을 다니며 “나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이래 고등학교 졸업 10년 만인 1969년 서울대 철학과에 최고령으로 합격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3선개헌 반대와 10월유신 철폐를 위한 학생운동에 동참하였고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양공업전문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경기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대 평교수협의회 회장 및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경기·인천지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동철학회, 문우회 회장 일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인간적 유물론》 《진리와 실천》(공저)이 있다.
- 출처 : 알라딘
관권동원을 통해 자유당에 대한 투표를 강요받은 유권자들
부정이 난무한 3.15 정부통령 선거
부정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투표용지를 불태우는 공무원들
마산시청 내 보관중이던 3.15 선거 투표 용지함
3.15 정부통령 선거 마산시 개표결과가 발표된 마산일보 특보기사
부정선거관계자 무더기 구형 공판 당시의 긴장된 피고인석과 방청석
단체적 폭력행위로 기소된 이정재 피고에게 사형이 구형되자 딱딱하게 굳은 이정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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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의 죽음과 관련, 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마산일보 기사
김주열 군의 시신을 유기하여 바다에 돌을 매달아 버린 범인이 마산경찰서 박종표 경비주임으로 밝혀졌다고 마산일보사는 벽보를 통해 발표했다.
김주열의 시신이 안치된 도립마산병원 앞에서 침묵으로 시위하고 있는 어린이들
아들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 잠긴 어머니 권찬주 여사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슬픔 속에서도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고 기자들에게 말하였다.
4.19 당시 여성, 어린이들이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
4.19 혁명 당시 서울시청 앞으로 하나 둘씩 집결하고 있는 시민들
중앙선관위의 반혁명적 행동에 항의하기 위해 운집한 중고교생들
"어느 정파를 위한 사월혁명 아니다 국법을 수호하여 피의 보답하라" 라며 시위를 벌이는 4.19 부상자들
국회 앞에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시위자들
-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4.3.15 청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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